[세상을 꼬집는 눈, 통(通)-성석제의 시공] 스마트폰만 만지작…두 사람 왜 만났나
[일간스포츠]

근래들어 거리에 몇 집 건너 한 집 꼴로 커피전문점이 등장하고 있다.
커피콩 하나 생산하지 않는 나라에서 수많은 커피전문점이 성업 중인 것은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수많은 자동차가 굴러다니는 것과 비견될 수 있겠다.
이 나라가 정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
그리고 자동차로 웬만한 산유국 부럽지 않은 수출고를 기록하고 있는 걸 보면
이 많은 커피전문점이 밑거름이 되어
우리나라가 전 세계 커피산업에 무슨 일을 내는 건 아닐까.

교역량에서 석유를 제외하고는 커피가 가장 많이 거래된다는 걸 생각해 보면
몽상만은 아니다.
언젠가 찜닭이며 조개구이가 유행했을 때
음식점 몇 집 건너 한 집 꼴로 찜닭이며 조개구이 체인점이 생겨나던 기억도 난다.
하긴 그때 우리가 닭이나 조개로 세계사에 무슨 대단한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니
마시고 먹는 분야는 또 다른 맥락이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 개개인에게 커피는 무역이나 경제적 차원의 관심사라기보다는
정신적인 영향이 더 크고 직접적이다.
산업혁명 이후 커피와 맥주 소비량이 급증한 것은
노동자의 노동력을 최대한 짜내기 위해 자본가들이
적극적으로 커피와 맥주를 공급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일을 시작하기 전, 또는 점심 식사 후의 커피 브레이크에
각성 효과가 큰 커피를 줌으로써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일이 끝난 뒤 값싸고 양이 많은 맥주를 마시게 해줌으로써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작가라는 내 신분이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건 커피로도 입증이 된다.
녹차를 포함, 몸에 좋다는 허브차니 대추차·모과차·생강차 등속을 마시면서
원고를 쓰려고 하면 어쩐지 싱겁다.
몸이 아니라 정신의 자세가 갖춰지지 않는다.
홍차나 녹차에도 카페인이 들어 있지만 카테킨 같은 다른 약리성분에 의해
카페인의 작용이 커피에 비해 훨씬 둔화된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커피는 노동의 음료이고 차는 위로의 음료라는 말’일 것이다.

며칠 전 마감이 임박한 원고 노동을 하기 위해 커피전문점에 들어갔다.
젊은 층이 선호할 만한 밝고 넓은 곳이었다.
큰 잔으로 커피를 주문하고 받은 뒤에 홀 가운데쯤 전원 콘센트가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노트북을 꺼내 전선을 연결하고
와이파이(고성능 무선통신을 가능케 하는 무선랜 기술)까지 연결을 마치고 나니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 여자 둘이 들어와 옆자리에 앉았다.
넓은 실내에 하고 많은 자리가 있는데도 굳이 내 옆자리에 앉은 것은
그들이 내 인상과 분위기에 끌려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가게에 들어오면서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기까지
줄곧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고,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아무 데나 걸터앉은 자리에
다른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동조한 것뿐이었다.

나는 노트북의 워드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수첩을 꺼냈다.
어떻든 희미한 기억과 생각을 문장으로 연결하려고 애를 쓰고 있던 참이었다.
옆자리의 세 사람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서로를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스마트폰을 조작하며
거기에 없는 다른 누군가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거나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입에서는 자신의 스마트폰과 관련된 말,
그러니까 방금 누군가 보내온 문자에 대해
또는 그 문자를 보낸 사람에 대해
또는 게임 상대에 대해 뭐라고 품평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다른 두 사람 역시 각자의 스마트폰을 바라보거나 터치하면서 그에 대한 반응을 내보냈다.
그런데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절반 이상이 욕설이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한 문장은 단 한 마디도 욕설이 섞이지 않고는 완성되지 않았다.
오로지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욕설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말도 있었다.
욕에 있어서는 남녀 불문, 완전한 평등을 구현하고 있었다.
마치 욕설이 섞이지 않은 평범한 문장은
'개밥에 섞인 도토리’이므로 반드시 퇴출시키고 말겠다고 도원결의라도 한 듯 했다.
기역부터 쌍기역·쌍시옷과 시옷·지읒·이응·비읍·피읍이 난무했다.

그게 일상이기 때문에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감탄을 금치 못해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게 자신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아무리 집중을 하려고 해도 그들의 욕설이
내가 쓰려는 문장과 생각의 틈을 파고들어서
유전자를 퍼뜨리려 들었던 까닭에 원고 노동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손을 놓고 나니 얼마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떤 부부가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집에 한 번 데리고 오라고 했다.
만나 보니 예쁘고 조신해 보이는 아가씨였다.
먼 훗날의 일이기는 하지만 결혼을 염두에 두고 서로 사귀고 있다니 흐뭇했다.
화기로운 분위기 속에 저녁이 지나갔고 후식으로 먹을 과일이 쟁반에 담겨 나왔다.
여자친구가 직접 깎아보겠노라고 했다. 그것까지 부부의 마음에 쏙 들었다.

반쯤 깎던 배가 손을 빠져나가 바닥에 구르는 순간 아가씨의 예쁜 입술에서
“이런 씨×”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부부가 놀라 나자빠진 사이 젊은 커플은 대충 자리를 수습하고 일어섰다.
아가씨를 바래다 주고 온 아들을 족쳐 어머니가 들은 대답은
“아, 우리끼리는 그런 정도 욕은 그냥 쓴다니까.
어머니 앞에서는 안 그럴 거라고 했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라는 것이었다.

신중하게 고른 끝에 두 번째로 들어간 커피전문점은
비교적 나이가 든 사람이나 직장인이 많이 출입할 것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어둡고 구석진 건물 2층이어서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는데 음악은 빠르고 시끄러웠다.
물론 그곳에도 연인들은 있었다.

한 커플은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켜고 각자 거기에 빠져 있었다.
각자 바빠 서로에게는 무관심해 보였다.
이따금 전화가 걸려오거나 문자가 오면 오히려 표정이 풍부해지고 활기가 솟아났다.
외부에서의 자극이 중단되면 다시 좀비처럼 각자의 기계에 몰두했다.
바쁜 와중에도 궁금해졌다. 두 사람은 왜 만났을까.
차라리 각자 집에서, 또는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문자나 전화로 소통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게 훨씬 더 서로를 더 깊고 애틋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묻지 않았고 따라서 대답을 들을 수도 없었다.
방해를 받지도 않았으니 절반 정도 노동량을 채울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일은 거기까지였다.
어느 순간 젊은 남녀가 들어오더니 화장실 가까운 구석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은 커피는 뒷전이었고 마주앉자마자
가슴을 탁자에 밀착시키고는 각자 팔을 앞으로 내밀어
서로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안더니 밀어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이따금 눈을 감고 어떤 감각인가를 깊이 음미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서로의 얼굴을 쓰다듬고 무슨 말인가를 속삭였다.

물론 내게는 단 한 마디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방해를 받았다.
그들 사이에 오가는 말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거기에 욕설이 섞여 있을지도 궁금했다.
결정적으로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내가 자리를 떠나면서 묻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이었다.
“그럴 거면 왜 마주앉았는데? 그냥 나란히 앉았으면 더 좋지 않아?”

어떻든 예전보다 훨씬 많아진 커피전문점 속에서
수많은 사람의 수많은 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 대화는 이 세계와 우리 사회의 고독과 스트레스,
분열과 전쟁으로 인한 비용을 엄청나게 줄일 것이다.
아 물론, 병원비와 보험료도.